농사값이 똥값인 시대이다. 저임금/비정규직 사회에서도 먹을 수 있도록은 해줘야 시스템이 유지되니까. 제일 만만한 농부의 밥그릇을 빼앗는 방식으로 빈곤그룹의 밥그릇을 채운다. 착취의 제일 아래쪽에 농부가 있는데 쥐꼬리만한 지원으로 조금 달래고, 스마트화/차별화/고급화 어쩌면서 그 안에서도 성공신화를 만들라고 기만당한다. 아무튼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니까 농촌은 대규모/대량투입/기계화 등의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왔다. 마지막에는 땅이 착취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그라미 순환은 없고, 직선의 착취만 있는 시스템. 빈곤과 착취의 시스템에 대한 저항하기 위해 혹은 애초부터 시스템과는 관계없었던 우리의 삶 자체를 복원하기 위해, 생계의 절반은 농사로 책임지고 나머지 절반은 다른 일을 하는 반농반X가 필요하다. 이 선언은 반농반X를 어떤 개체의 자족적인 삶의 양식이 아니라, 지금 시대에 유행처럼 번저야 하는 삶의 양식이라는 고민 속에 쓰여지고 있다.
첫째, 땅에 대한 착취를 멈춰야 한다. 땅의 생명력을 짓밟으면서 생산되는 먹거리와 만들어지는 관계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소수의 농부가 나머지 절대다수의 먹거리를 책임지기 위해서 대규모로 농사를 지어야하는 구조에서 땅을 자생력없는 인공적인 생산처로 전락시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땅에 대한 착취를 멈추기 위해서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또 주변을 위해서 스스로 농사짓는 삶을 살아야 한다. 소수가 다수를 위해 농사 짓는 방식이 아니라, 모두가 스스로를 위해 농사 짓는 방식. 즉, 반농반X가 되어야 한다.
둘째, 사회 구성원의 절반은 반농반X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속해있는 빈곤과 착취의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또 다른 질서를 구축할 수 있다. 전체의 10%만 반농반X의 삶을 살기 시작해도 시스템은 급격하게 흔들릴 것이고 다른 질서는 뚜렷하게 체감될 것이다. 그 때부터 사회 구성원의 절반이 반농반X가 되는 것은 한 순간에 불과하다. 사회의 반농반X화를 통해 다른 질서를 만든다는 것은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 농부에 대한 소비자의 착취를 해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사가 있는 곳에 시가 있다. 반농반X 선언은 아직 본격 반농을 시작하기 전에 쓰여졌기에 다소 투박하다. 하지만 친구여, 이제 우리 곧 반농반X가 되어 시로 말하고 시로 듣는 삶을 살아보자. 빈곤과 착취의 시스템에 치명적인 콧방귀를 끼어보자.
2016-01-05 16:5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