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째 대보름이면 찾아가보는 해남 동현마을 헌식굿. 섬지방이나 바닷가마을은 아직도 마을제사가 많이 남아있는데, 바다와 접하고 있다는 것은 늘 자연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연-신'의 철학), 바다라는 공유지가 여전히 마을 공동의 생산기반이 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경제-공동체'라는 운명)
동현마을 헌식은 집집마다 대보름 제사음식을 장만해 (밭일 참 내가듯이) 고무 다라이에 한상씩 차려나와 갯벌에 올려놓고 제사를 지낸다. 헌식은 음식을 바치는 제사인데, 바다에서 바다로부터 바다를 떠도는 이름모를 영혼들에게 바치는 음식이다. 마을제사는 마을의 신에게, 집제사는 조상님 혹은 성주님 조왕님께 바치는 제사인데 반해, 헌식은 남에게 바치는 제사라는 점에서 특이점이 있다. 잘 모르는 잡귀잡신도 대접해주는 후한 인심이랄까. 그만큼 돌아오는 것도 있겠지?
제관은 그해의 생기복덕을 가려 뽑는데, 생기복덕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기가 있는 법이므로, 누구나 제관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남자사람에게만 돌아간다는 것은 시대의 한계라고 괄호 쳐놓고 본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은, 마을제사가 온전한 의미로 마을구성원 모두의 일이고 모두에게 그만한 지식과 능력이 있다는 것. 수준높은 민주주의에서 대의원을 추첨으로 뽑는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까. 물론, 지금은 제관을 그렇게 뽑지는 않는다. 마을 이장님이나 마을의 제일 어르신이 하겠지? 제관으로 뽑히면 한동안 찬물목욕만 하는 등 금기를 실천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동현마을은 다 해서 50가구 정도 되는 마을로 집집마다 한 다라이씩 장만해서 갯벌에 나온다면 헌식굿의 규모가 어마어마할텐데, 아쉽게는 2018년 오늘 헌식굿의 규모는 그러지 못하다. 몇해전에 찾아갔을 때는 그래도 20 다라이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해가 바뀔 수록 굿에 참여하는 다라이?는 줄어들고 있다.
굿은 보름 전날 오후 4시경부터 시작하는데, 3시부터면 악기치는 치배들 굿 시작하니까 어서 회관으로 모이라고 마을방송을 하지만 별로 모이는 사람은 없다. 사실 동현마을은 년중에도 일상적으로 모여서 악기연습을 하는데, 어느 시골에서나 마찬가지이지만 남자사람보다는 아짐들이 더 많다. 근데 그 아짐들은 헌식굿을 하기 위해 새벽부터 음식을 준비해야 되는 상황. 그러니까 마을방송은 매우 공허한 셈이다.
예전에는 제관부터 치배까지는 남자들만 하고, 여자사람들은 음식준비만 했었겠지? 근데 이제 남자들은 그마저도 안하고 그저 말로만 준비할 뿐이다. 그러니 마을굿이 계속될 수 있을까? 청년회가 음식준비와 설거지를 도맡아하고, 부녀회에서 제관과 치배를 도맡아하는 역전이 발생하거나 다른 관계-구조로 역할 분담이 재배치되지 않는다면 마을굿은 점차 사그라들 수 밖에 없다.
결국 마을굿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페미니즘이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 마을굿과 함께 구시대도 안녕. 안타까울 이유도, 뜨거울 필요도 없고, 시크하게.
"응? 가니? 그래 잘가~"